아동에 대한 관점은 역사적인 시점에 따라 달랐다. 역사적인 시점을 고대사회, 중세 사회, 근대사회, 현대사회로 나누어 각 시대의 아동관을 알아본다. 고대사회는 부족과 종족의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시되는 사회였다. 따라서 아동은 한 인간으로서의 당당한 권리를 가진 인격적인 존재였다기보다 종족 보존을 위한 수단적인 존재였으며, 어른들의 성적 욕망에 의해 태어난 귀찮은 존재로 여겨졌다. 아동의 이름도 노동이 가능해지는 7, 8세경에 정식으로 주어졌다. 아동에 따라 몸이 허약하다든지 식량부족으로 양육이 어려울 때 살해되거나 버려지는 경우가 많았다. 카두신에 따르면 아마존 지역의 인디언들은 태어난 아기를 강물에 떠내려 보내 건강하게 살아남은 아이만을 키웠다고 한다. 영아살해와 기아는 인구 조절을 위해서도 필요한 방법으로 생각되었으며 18세기까지도 존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중세에 들어와서도 초기에는 고대사회와 큰 차이가 없었던 것 같다. 그때까지도 아동은 군사력과 경제력 확보의 수단으로 간주하였다. 에리에스가 쓴 「아동기의 세기-가족생활의 사회적 역사」에 따르면 위와 같은 아동에 대한 관점은 아동에 대한 애정의 부족이라기보다 아동의 특수성에 대한 인식의 부족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아동은 나름대로 독자적인 특성을 인정받지 못하였으며, 성인의 기준에 비추어 모든 면에서 부족하고 신체적인 크기가 작은 성인의 축소물로 생각되었다. 그리하여 아동은 5, 6세 정도만 되면 어른으로 취급되어 노동과 군사 활동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중세 말기에는 기독교 사상이 사회를 지배하면서 아동도 영혼이 있는 존재며 이들의 생명을 빼앗는 행위가 죄악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교회의 재원이나 시설을 이용하여 가난하거나 의지할 곳 없는 아동들을 보호하기도 하였다. 이때부터 아동보호 사업과 서비스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아동보호는 동정적인 감정에 근거를 둔 종교적 자선 행위였고, 개인의 욕구나 권리를 존중한다는 인격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 사업은 아니었다. 중세 사회의 아동관은 근대에 와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즉, 아동은 성인의 축소판으로 생각되었다. 다만 계층과 성에 따라 이러한 관점에 차이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상위층의 아동과 남자아이는 아동의 특수성이 인정되기 시작하였고, 노동 계층의 아동과 여자아이는 여전히 어른의 축소물로 간주되었다. 또한 빈곤 가정의 아동이나 고아에 대한 관점도 약간 변화를 가져왔다. 종전에는 이러한 아동들이 성인 범죄자나 병자 등과 함께 구빈원에 수용되었는데, 17, 18세기에 들어오면서 성인 범죄자나 병자들과 분리되어 일반가정에 위탁되는 제도가 마련되었다. 그러나 역시 산업혁명과 함께 아동들의 노동력이 값싼 임금으로 요구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근대의 아동관은 18세기 루소에 의해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스위스에서 출상한 루소는 아동에게도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하며, 개인적인 자유와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에 의하면 아동은 성인의 축소판이 아니라 독자적인 특성을 갖는 고유한 존재였다. 20세기는 '아동기 과학'의 시대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이 말은 20세기에 들어와 비로소 아동의 본성에 관한 과학적인 이해가 시도되었으며, 아동에 대한 관심과 사업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던 현상을 가리킨다. 20세기 후반에 이루어진 피아제, 프로이트, 에릭슨 등과 같은 발달심리학자들의 체계적인 연구 결과는 한 인간의 성장·발달에 있어 아동기의 중요성을 크게 부각시켰으며, 아동을 과학적으로 이해하는 데 이론적인 발판을 제공해 주었다. 아동은 고유한 특성과 독자적 인격을 갖춘 존재라는 관점이 보편적으로 인정되었다. 또한 1959년에는 UN이 '아동권리선언'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아동관의 변화는 아동교육의 지나친 확대를 불러왔으며, 결국 '아동기의 실종'으로까지 몰고 가는 부작용을 낳게 되었다. 지적 성장과 기능 습득을 지나치게 추구한 나머지 어린 아동 고유의 놀이와 문화가 통제받게 되었으며, 따라서 또 다른 형태의 아동 억압이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유아들이 각종 학원 교육에 내몰리고 있는 현상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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